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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상식

대재앙 속 AI는 모성을 학습할 수 있을까…재난과 SF 사이에서 침몰한 넷플릭스 영화 ‘대홍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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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홍수

 

넷플릭스 오리지널 영화 〈대홍수〉는 공개 전부터 ‘SF 재난 블록버스터’라는 수식어를 내세웠다. 소행성 충돌, 지구 침수, 인류 멸망, 그리고 인공지능(AI)을 통한 ‘새 인류’ 창조까지. 장르적 재료만 놓고 보면 야심은 분명했다. 문제는 이 모든 요소가 유기적으로 결합되지 못한 채 각자 흘러간다는 점이다.


▪ 재난 영화의 문법, 초반까지는 충실하다

영화의 시작은 전형적인 재난 영화의 공식 위에 놓여 있다.
외부와 단절된 공간, 점점 차오르는 물, 패닉에 빠진 사람들, 그리고 아이를 지켜야 하는 엄마 안나(김다미). 아파트라는 수직 공간은 물이 아래에서부터 차오르는 재난의 속성과 잘 맞물리며 긴장감을 만든다.

초반부만 놓고 보면 〈대홍수〉는 장르 이해도가 높은 영화처럼 보인다. 제한된 공간 속에서 선택의 시간이 줄어들고, 생존자들의 갈등이 자연스럽게 발생한다.


▪ SF 설정이 중심이 되는 순간, 균열이 생긴다

이야기는 보안팀 희조(박해수)가 등장하며 급격히 방향을 튼다.
안나가 단순한 생존자가 아니라 ‘이모션 엔진’을 개발한 AI 연구원, 그리고 그의 아들 자인이 ‘새 인류 창조 프로젝트’의 핵심 실험체라는 사실이 드러나면서 영화는 재난에서 SF로 급변침한다.

문제는 이 전환이 충분히 설명되지 않는다는 데 있다.
왜 새 인류가 필요한지, 기존 인류는 어떤 합의 과정을 거쳤는지, 자인은 어떤 방식으로 만들어졌는지에 대한 서사는 거의 생략된다. 그 결과 거대한 세계관은 설득력을 갖지 못한 채 이야기의 중심을 차지하게 된다.


▪ ‘모성’만 남은 서사 구조

재난과 SF라는 두 장르가 충분히 융합되지 못하면서, 영화는 결국 ‘아이를 지켜야 한다’는 모성의 당위만을 반복한다. 안나의 선택 역시 능동적이라기보다는 강요와 상황에 떠밀린 결과에 가깝다.

특히 타임 루프 구조가 본격적으로 드러난 이후, 아파트는 더 이상 재난의 공간이 아니라 AI 학습을 위한 시뮬레이션 실험실처럼 기능한다. 안나의 티셔츠에 새겨진 숫자가 회차를 암시하며 반복과 학습의 개념을 제시하지만, 이 과정에서 인간적 감정이 어떻게 축적되는지는 충분히 설명되지 않는다.


▪ 기술은 남고, 이야기는 침몰한다

후반부로 갈수록 영화는 기술적 아이디어를 이미지로 구현하는 데 집중한다. 벽면이 데이터처럼 변형되고, 공간은 점점 비현실적인 모습으로 바뀐다. 그러나 이러한 시각적 장치들은 서사를 보완하기보다 서사의 공백을 가리기 위한 장식처럼 보인다.

결국 〈대홍수〉에서 끝까지 수면 위에 남는 것은 실감 나는 홍수 VFX와 김다미의 연기다. 김다미는 모성이라는 감정을 최대한 본능적으로 표현하며 캐릭터를 붙잡아 보지만, 영화 전체를 떠받치기에는 구조가 지나치게 불안정하다.


▪ 야심은 컸으나, 논리는 부족했다

〈대홍수〉는 재난영화의 긴박함, SF의 철학적 질문, 인간성에 대한 탐구를 모두 품으려 했다. 하지만 너무 많은 것을 짧은 러닝타임 안에 담으려 한 결과, 어느 하나도 완성도 있게 도달하지 못한 채 침몰하고 만다.

 

아이를 구하는 것이 인류를 구하는 일이라는 등식이 성립되기 위해서는,

그 과정에 대한 훨씬 촘촘한 설명이 필요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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